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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나는 수술이 필요했을 것이다. 오늘 일이 아니더라도.
거의 한 달이 된 것 같다. 왼쪽 엄지발가락이 조금 부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며칠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더니 고름 비슷한 것이 나오고, 일주일쯤 더 지나니 염증이 생겼다. 걸을 때마다 조금씩 고통이 느껴졌고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아 학교 보건소를 찾았다. 의사는 상처에는 후시딘을 바르고 항생제를 먹어보라고 했다. 일주일치 항생제의 가격은 만원이 넘어 깜짝 놀랐다.
몇 안 되는 재미의 하나인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상처가 악화될 수 있으니 운동도 삼가해야 했다. 모든 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빨리 나아야겠기에 꾹 참고 하루 세 번 약을 잘도 챙겨먹고 연고도 자주 발랐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차도가 없어 다시 의사를 찾았더니 끔찍한 소리를 들었다.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다. 보건소에서는 안 되니 보라매 병원에 가보란다.
잘 낫지 않는다 싶었지만 수술이 필요하다니. 염증이 일어나는 쪽으로 발톱을 세로 방향으로 길게 잘라낸다는 것이다. 군대 시절 발톱이 네 개나 빠져봐서 발이 아플 때의 불편함과 그 고통은 익히 알고 있기에 대수롭지 않은 수술로 여겼다. 주변에도 가벼운 투로 수술받을 예정이라고 광고하고 다녔다. 다만 수술을 하면 추가로 금주와 운동금지의 기간을 가져야하는 것이 성가실 따름이었다.
보건소에서는 수술의 필요성을 알려주고 일단은 추가로 일주일 동안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먹어보라고 했다. 이전 항생제와 달리 이번 것은 약효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낫지는 않았다. 결국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며칠 전 보라매 병원을 찾았다. 보라매 공원과 롯데백화점 관악점엔 몇 번이나 갔는데 바로 옆에 있는 보라매 병원 위치를 몰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야 했다.
세상이 좋아 전화, 팩스, 인터넷 등 온갖 방법으로 예약을 할 수가 있는데 무작정 찾아갔더니 사람이 많아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게다가 특진이라는 듣기 거북한 방법을 거의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했다. 의사는 몇 명 있었지만 특진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물론 몇 천 원 더 내는 것이라지만 엄청나게 병을 빨리 낫게 해주는지는 회의적이다.
다음 날 아침 9시 15분이라는 이른 시각에 병원으로 갔더니 특진 의사는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수술을 하자고 한다. 보건소의 의사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당연하게, 이 방법말고는 없다는 듯이. 좋다고 했고, 의사는 보건소와는 또 다른 연고와 약을 처방했다. 며칠 먹고 바르고 하니 확연히 부은 것이 가라앉았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희망까지 먹을 정도였다. 기대는 오늘 아침 산산히 무너졌지만.
서론이 너무 길었다. 결국 오늘 아침 수술을 받았다. 특진 의사는 피가 좀 날 거라는 말로 짧은 진료 시간을 끝내고 나를 수술실로 보냈다. 수술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것들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특진 의사는 주말 동안 제대로 걷지 못할 것처럼 말했고, 간호사는 수술 준비가 길게 필요하니 약국에서 처방된 약을 미리 사두라고 했다. 약을 사서 기다리니 수술이 삼십 분 정도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발톱 좀 잘라내는데 무슨 삼십 분? 태연한 척 해도 조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에 도착한 지 한 시간을 조금 넘긴 시점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지난 번에 상처를 소독한 비교적 젊은 의사가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했고, 행여나 바쁜 특진 의사가 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대신에 아리따운 여성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대뜸 하는 소리는 수술이 내 생각보다 더 아픈 수술이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고작 발가락 일부를 수술하는 것이지만 큰 수술인 양 누워있었다. 의사가 마취 주사가 아플 것이라 하니 정말 오랜 시간 고통을 느껴야했고, 아마도 메스를 댔던 것 같은데 기분 나쁘게 따끔했다. 내 발은 왜 이 모양일까 한탄하고, 왜 진작에 병원을 찾지 않았나 후회하고, 가위가 잘 들어야 할텐데라고 얄밉게 말하는 의사를 원망하며 20여분간 누워있었더니 끝났단다.
슬픈 사실은 영원히 내 왼쪽 엄지발가락의 발톱의 폭이 얇아졌다는 것이다. 발톱을 잘라내면 다시 자라겠거니 했는데 재발을 우려해 뿌리까지 제거해서 원래대로 될 일은 없단다. 절뚝거리며 걷다가 택시를 타고 갈까 싶기도 했지만 마취가 풀리기 전이라 버스를 타고 가도 괜찮을 듯 싶었다. 나는 너무나 환자에 장애인이 된 느낌이었다. 버스 노약자석이 당연해지고, 식당의 장애인석도 내 자리인 듯 싶어졌다.
몇 시간 지나 마취가 풀리니 서서히 고통이 느껴졌고, 의사가 조언한대로 타이레놀을 사둔터라 한 알 먹었다. 타이레놀을 사서 먹은 것은 처음인데 비교적 편하게 낮잠을 잘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진통 효과가 괜찮았던 모양이다. 수술을 한 의사는 밤에 욱신욱신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꽤나 참을만해서 수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의사들의 태도가 이해가 될 지경이다.
수술은 필요했다. 꽤나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마련해주지 않았나. 강제적으로. 요양한는 셈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부모님 생각도 하고, 해외에 있는 형 가족 생각도 하고, 대강대강 사는 일상에 대한 반성도 하고. 발톱 주변을 수술했지만 내 일상에 대한 수술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이 위기의 시대에 변화없이 대충 사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리라. 제발 수술하자. 의외로 대수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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