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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 문학 읽기

카지노 베이비 (2022, 강성봉)

by wannabe풍류객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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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가 쓴 단편소설을 보여주었다. 소설의 소재 때문에 나에게 무언가 질문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거의 20년 전의 일이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영화 감독을 꿈꾸었고, 나는 출연배우로 써달라고 청탁을 미리 해두었건만 대학에 간 그는 소설이나 연극에 더 관심을 가졌고 결국 긴 시간이 지나 첫 장편 소설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다. 포스팅 제목의 소설에 대한 개인적 인연을 미리 밝혀두기 위한 설명이었다.

 

강원랜드에 대한 소설이나 영화가 있었나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지노가 드라마, 영화에 자주 등장했지만 강원랜드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카지노가 흔한 소재인 건 우리보다 내국인 접근성이 좋기 때문일 텐데, 강원랜드는 정치인의 취업청탁 혐의 같은 뉴스 제목으로 접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강원랜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 대한 추천 혹은 심사평에도 나오지만 카지노에서 넋을 잃고 떠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원래 정선(소설에서는 지음이라고 변경되었다)에서 살던 사람들이 주요 캐릭터들이다. 생각해보면 이들도 대개는 정선 토박이는 아니다. 탄광 붐에 이끌려 몰려든 외지인과 그 후손이 대부분이다. 이상향을 찾아 떠난 젋은 커플, 집안의 위기 속에서 가계를 꾸려간 할머니 캐릭터의 위상, 여러 붕괴, 소멸의 이미지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백 년의 고독'은 세상이 끝나는 듯한 강렬한 종말의 이미지로 끝난 반면 '카지노 베이비'는 희망의 분위기를 남긴다.

 

카지노 근처 전당포에 맡겨진 아이라는 서술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의 내용은 열 살 쯤 되는 동하늘이라는 캐릭터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아기 때 전당포에 맡겨져 전당포 집 사람들의 가족이 된 하늘이가 어느 순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데 그 과정은 카지노 전성기에 기여하고 자신은 불운해진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지노에서 떠나지 못 하는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아이를 낳고, 아이를 카지노 직원에게 맡기고 또 도박을 하다가 엄마는 죽고, 아빠는 아이를 버린다. 카지노에서 잉태된 아이는 성장한 후 카지노에 들어가고 싶어하고, 그것이 실현되자 카지노가 붕괴한다.

 

소설의 이야기 전체는 카지노의 붕괴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하다. 무당이 이미 하늘이가 아기일 때 예언했고, 정신 나간 삼촌이 예언했고, 하늘이도 꿈에서 붕괴를 이미 경험했다. 소설의 서술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었는데 실제 강원랜드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 소설 속의 카지노 붕괴, 싱크홀은 소설 내에서는 진실로 보아야할 것 같다. 아마도 작가는 강원랜드 카지노로 상징되는 무언가가 결국엔 붕괴되리라 경고하는 듯 하다. 하지만 제2 카지노 부지가 마련되어 있는 것처럼 탐욕적인 자본주의 세계에서 한 쪽의 붕괴가 즉각적인 종말은 아닐 수 있다.

 

소설의 서사는 독자가 궁금해할만한 상황을 처음에 던지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각 캐릭터들의 사연을 푸는 식으로 전개되고 이야기의 중심인 할머니의 생애는 3부에서 정연하게 정리된다. 화자가 가정사를 잘 알 수 없는 어린이이기 때문에 아이가 자신 주변의 상황을 깨닫는 과정이다. 하지만 나의 열 살 시절을 회상하거나 혹은 내 아이의 열 살을 옆에서 지켜볼 때 화자의 서술은 비현실적이다. 화자가 나이를 더 먹은 후 열 살 시기를 회상하는 것도 아니기에 화자의 나이를 열 살로 믿기 힘든 지점들이 많은 건 아쉽다.

 

엄마와 삼촌 캐릭터의 부재도 아쉬운 대목이다. 엄마는 2부에서 용 사장과의 로맨스 파트가 있긴 하지만 1부에서 봤던 그녀의 이상한 모습과 잘 매치가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삼촌의 부재는 더욱 심각한데 초반에 예언자로 나온 이후 후반의 극적인 각성까지 삼촌은 무얼했는지 알 수 없다. 물론 같은 말만 반복하는 넋이 나간 사람이라 쓸 말이 별로 없을지 몰라도 아이의 시점에서는 매우 가까운 사이일 터인데 삼촌의 부재는 크게 드러난다. 결과적으론 삼촌이 끄적인 예언서대로 지음이 흔들리고 랜드가 무너지게 되지만 이 예언자가 어떻게 그런 결론에 다다랐는지는 알 수 없다. 만약 종교적 계시라면 결론에 이르기 전에 논리를 쌓을 필요는 없다. 

 

염 목사라는 캐릭터는 할머니가 브로커로 평가하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어떤 역할을 마을에서 했는지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할머니의 유언에서 드러나길 할머니가 염 목사에게 돈을 빌려주는 댓가로 이자를 받고, 목사는 도서관에 돈을 빌려줘서 건축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데 왜 그런 일을 한 것인지, 그는 지음에서 유익한 존재였는지 아닌지 잘 판단이 되지 않는다. 정선의 실상은 모르지만 그 동네에 아이가 얼마나 있어서 공부방이나 도서관이 필요한지(물론 아이가 아무리 적더라도 필요하긴 하다), 필요악처럼 그려진 염 목사는 왜 굳이 할머니 돈을 빌려서 도서관을 완공하려했는지. 

 

아마 외지인들의 공간인 지음에 교회가 필요한 건, 개발의 시대에 무작정 상경한 농촌 사람들이 몰려든 서울에 여러 교회가 번성한 것과 비슷한 이유 때문일 수 있다. 특히나 카지노 설립 이후엔 돈에 환장한 사람들, 자본주의 극단의 말초적 유혹에 이끌린 사람들, 권력자들, 적당한 수수료에 만족하는 사람들을 이어줄 브로커로서 목사가 필요할 수 있다. 악을 행하며 위안을 얻기 위해. 

 

소설을 처음 읽고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다시 훑어보며 해소된 대목이 많은데, 애초의 혼란의 이유는 하늘이의 꿈, 악몽에 대한 묘사 부분 때문이었던 듯 하다. 삼촌이 지음이 흔들리고 랜드가 무너진다고 외친 건 나름 과학적인 관찰의 결과인데, 처음 지음이 재해로 인해 워터파크가 되는 붕괴의 전조가 있고, 랜드에 보강공사를 하자고 주장한 내부자가 자살 당하고, 건물 안의 여러 균열 조짐, 이상한 냄새가 나타난 후 예언처럼 꿈에서 이미 본 장면처럼 카지노가 폭삭 무너졌다. 대략 종말의 시나리오는 그러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종말 이후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탄광이 끝장나며 생계를 걱정해야했던 지음 사람들은 이제 제2의 직장이 된 카지노가 무너지며 다시 생계를 걱정해야한다. 물론 많은 가족들이 랜드가 무너지며 함께 생매장되거나 크게 다쳤으므로 아마 탄광 시절보다 극심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지음을 떠났다. 이 삭막하고 살길이 막막한 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제2의 랜드 부지가 있는 걸로 봐서 또 카지노를 세울 계획도 있는 듯 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랜드 부지의 한가운데에 할머니가 땅을 사 두었다. 일의 선후가 명확하지 않지만 할머니가 먼저 사고 그 주변 땅을 랜드에서 샀다고 봐야할 듯 하다. 랜드가 이미 산 땅을 할머니에게 팔리는 없으니. 할머니는 어떤 선견지명을 통해 자식과 손자에게 선택권을 준 셈이다. 작은 땅은 랜드에 아주 비싸게 팔 수도 있고, 혹은 팔기를 거부하여 제2의 랜드가 지어지는 걸 막을 수도 있다.

 

매우 큰 선택지가 주어진 셈인데 보통의 경우엔 거대 자본이 승리하게 되지만 작가가 여지를 준 이유는 단지 소설 속 세상이 아니라 현실의 우리 모두에게 어떤 선택을 할지를 고민하라고 묻기 위해서일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물음일 수도 있고, 6월에 눈이 내리는 장면을 감안하면 기후이변, 지구온난화라는 자본주의보다 더 크고 근본적인 물음이 던져지기도 했다.

 

기후이변에 대해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경고등이 정신없이 켜져있다. 이미 우리는 패배 직전의 상황이지만 어쩌면 저항하고 반전을 모색할 기회가 있는지도 모르고, 설사 패배할 운명이더라도 어떤 식이건 승리를 꿈꾸며 노력할 수밖에 없다. 8월의 물난리를 겪고 보니 앞으로 인류에게 닥칠 고난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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