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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한국 문학 읽기

사망 보류(이범선)

by wannabe풍류객 2011.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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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2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이다. 결핵에 걸려 죽음이 예정된 철이라는 6학년 선생이 비슷한 처지의 4학년 담임 박선생과 전쟁 당시의 기억을 회상한다. 사망 보류는 철이 곗돈을 타는 25일 전에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당부를 아내에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우선 '국민학교' 6학년 담임은 방학이 없다. 토요일에도 오후 6시까지 있어야 한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중학교 진학 지도 때문에?

정미소 기계가 언급되고(박선생은 그 기계처럼 고장나서 쉬고 싶다고 말한다), 아침 조회의 마이크가 언급된다. 박선생이 결근한 후 임시 교사로 후원회 회장인 양조장집 아들이 온다. 그는 알코올 솜으로 책상을 닦는다. 박선생은 병역 신체검사에서 제일 을종 합격이었다. 교무실 벽에는 노대통령(즉, 이승만)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박선생이 교무실에서 쓰러진 이후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철은 '차'를 부른다(택시인가?). 박선생은 자기 반 학생의 집의 문간방에서 부부와 자식 셋이 함께 살았다. 아이 둘은 박선생의 점심도시락의 멸치 꽁지를 먹었다. 

박선생이 죽은 후 철이 선생들이 모은 조의금을 들고 찾아가려했으나, 서무실에서는 돈대신 차용증서가 담긴 봉투를 내놓았다. 최선생의 곗돈을 박선생이 꿨던 것이다. 이 사건을 보며 철은 수원역에서 있었던 일을 회고한다. 용산역에서도 많은 사람을 못 태운 화물열차가 수원역에서 사람을 태울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철의 가족 쪽으로 올라와 짐 보따리를 끌어오렸다. 그러자 한 애꾸눈 청년이 그 짐을 던져버렸고 그 사람이 다시 가지고 올라오기를 세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기차는 떠났다. 애꾸눈이 그렇게 도와주고 싶으면 당신이 내리라는 말에 철은 답할 수 없었다. "다 저부터 살내기지 머"

숙직실에 누워있던 철은 2층에서 여자 아이들이 '고향의 봄'을 부르는 걸 들었다. 여전히 친숙한 이 노래는 그 때도 유명했다(이미 1929년에 만들어졌다). 그 노랠 듣고 철은 다음 날 소풍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고, 소풍가서 단풍 구경을 잘 했으나 비를 흠뻑 맞고 각혈이 심해졌다. 이렇게 결근을 이어가며 어느 날 시장에서 박선생 부인을 본 생각을 떠올린다. 고구마를 팔던 그 여인. 그녀는 10만환(박선생이 빌렸던 돈의 액수와 같다)만 있었으면 이러고 있지 않았을 거라며 하소연을 했지만 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박선생은 '인간 폐업'을 하고 싶었으나 배고픈 자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했다. "...... 어쨌든 죽는 순간까지 악을 쓰고 살아야잖우. 아니오. 죽고도 더 살아야 할 형편인걸요." 철도 죽음을 직감하고 약 먹기를 포기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써야 할 곗돈을 위해 24일에 죽어도 25일에는 산 사람이어야 했다. 정말 죽어도 더 살아야 했다. 

요즘 최고 인기 직업인 초등학교 선생의 형편이 1958년에는 이토록 열악했다. 정기적인 월급을 받았을 선생이 이 정도였으면 인구 대다수의 빈곤층은 어떻게 살았단 말인가. 결핵 환자도 많았던 모양이다. 전쟁이 머지 않은 과거의 일이었기에 현재의 불행과 무기력은 전쟁 당시 인간의 나약함과 바로 일치되었다.  

- 박선생에게 곗돈을 꿔준 한 선생은 박선생이 "십만 환짜리 돈뭉치"로 보인다고 농담을 한다.

- 결핵 환자를 위한 것인지 '손 요강'이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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