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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버드맨과 윕래쉬

by wannabe풍류객 201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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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반 유명한 세 개의 시상식이 모두 끝났다. 골든 글로브, BAFTA, 아카데미의 세 시상식은 2014년 한 해의 영미권 영화들을 되돌아보며 여러 부문으로 나눠 시상을 한다. 보통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일 것이다. 세 시상식 모두 이 분야의 시상자, 작품을 결정하는데 골든 글로브 같은 경우는 TV 드라마 부문도 시상하는 것이 다르다. 


세 시상식 중 영국에서 열리는 BAFTA는 국내에서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시상식에 헐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참석하는 작지 않은 시상식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다른 두 시상식에 비해 영국 작품들을 더 비중있게 다룬다. 올해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관한 모든 것 덕에 과거의 개인사가 더 유명해진 호킹이 직접 시상식 장에 나왔던 점이 눈에 띈다.


수상자나 수상작을 정확히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남우주연상은 호킹을 열연한 에디 레드메인이 휩쓸었던 것 같다. 아카데미는 버드맨의 강세가 두드러졌지만 마이클 키튼은 주연상을 받지 못했다. 남우조연상은 윕래쉬(Whiplash, 위플래쉬)의 악랄한 선생 J K 시먼스가 많이 가져갔다. 윕래쉬의 주인공인 마일즈 텔러도 무언가 상을 받았는데 어디에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이미테이션 게임은 여러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고 별로 수상하지 못한 것 같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취향을 탈 것 같은 영화지만 의외로 상을 많이 받았다. 인터스텔라의 시상식 성적은 말할 필요도 없다. 후보에도 별로 오르지 못했으니. 셀마는 노래로 상을 몇 개 받았다. 


세 시상식의 미묘한 차이들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겠으나 화제작 두 편에 대해 적어보기로 한다. 버드맨은 개봉 직후부터 평단의 극찬을 받은 영화였고, 윕래쉬도 그런 편이다. 둘 다 평균 평점이 9점을 넘나들 정도인데 역시나 영화를 직접 본다면 과연 그렇게 느껴질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여하튼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행자인 닐 패트릭 해리스가 팬티만 입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드럼을 열심히 치는 마일즈 텔러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That's not my tune! 이라고 외친 것은 두 영화가 겹치는 지점을 잘 포착한 콩트였다. 윕래쉬는 원래 드러머에 대한 이야기지만 버드맨에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드럼 소리는 영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버드맨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을 차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제 급히 도서관에 가서 읽어보니 카버의 소설과 영화 속 이야기는 상당히 달랐다. 카버의 소설에서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나온 것을 영화에서 더 확대시킨 것 같다. 영화와 관련하여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죽이고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다. 


마이클 키튼은 설정상 버드맨이라는 히어로물로 20년 전에 유명했던 영화배우인데 이제는 브로드웨이에서 연극배우로 다시 우뚝 서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는 카버의 소설을 변형하여 사랑에 목마른 한 남성을 연기했다. 연극은 키튼의 권총 자살로 끝난다. 키튼이 갈구한 사랑은 이혼한 전처, 관계가 소원한 마약 중독 상태였던 딸로부터 원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결국은 20년전의 영광, 지구적 팬덤을 되찾는 문제였다. 


그래서 그는 다시 날았다. 애들을 위한 히어로물의 주인공이 아니라 진짜 연기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특히 이 대목에서는 유명 평론가의 자극이 중요한 계기가 된다, 진짜 권총까지 연극 무대에 갖고 올랐다. 진짜 권총의 사용은 연극의 네 명 배우 중 한 명인 에드워드 노튼의 자극에 힘입은 바도 크다. 노튼은 진짜 같은 무대를 요구했고, 권총도 진짜로 쓰라고 말했다. 연기의 진실성을 높여 불멸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욕망이 키튼의 기행을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연극 초연 무대에서 키튼의 총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그는 입원하는 신세가 된다. 코가 날아갔다는 설정인데 안면 붕대를 푼 키튼의 얼굴에는 어째서인지 코가 붙어있었다. 벌써 수술을 하여 새 코가 붙어있는지 모르겠으나 원래 코와 달라보였다. 마치 키튼이 버드맨 시절 분장 의상을 입고 부리가 달린 가짜 코를 붙이고 다녔던 것처럼 그는 새가 되어 창문을 넘어 날아갔다. 결말은 이후 병실에 들어온 딸이 창문을 열고 위를 보며 기쁘게 웃는 장면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 모양이다. 키튼은 다시 난 것으로 해두자.


버드맨의 드럼 비트에 대해 아까 이야기했는데 카메라 촬영이 기가 막혔다. 촬영은 시상식에서도 수상으로 결실을 맺었는데 장면 장면이 계속 이어진 것처럼 잘 찍었다. 


버드맨이 괜찮은 영화 같고 미국 히어로물에 대한 풍자극으로서 성공적이긴 한데 아무래도 한국 정서에는 딱 들어맞을 것 같지는 않다. 각본을 쓴 사람의 책임이지만 에마 스톤의 김치 발언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윕래쉬는 비교적 알기 쉬운 설정 때문에 버드맨보다 인기를 끌 요소들은 있으나 이걸 보고 나면 이게 뭔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유명한 대학 재즈 밴드에 들어가게 된 어린 드러머가 뛰어나지만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선생을 만나 이른바 포텐을 터뜨리는 이야기라고 하겠는데 선생역의 시먼스의 극단적인 방식이 용납될 수 있는지 혹은 과연 효과를 나타날 수는 있을지 의문이랄까. 시먼스의 논리를 따르자면 결국 대가가 될 사람은 어떻게든 되는 것 아닐까? 어린 시절 어떤 선생의 몰아붙임으로 좌절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가 그 대가의 성립에 결정적인 변수였을까?


오히려 플레쳐 역의 시먼스의 자신감, 내가 최고의 재능을 길러낸다, 내가 대가가 될 잠재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오만함일지 모른다. 결국 그가 길러낸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은 어린 나이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 그 현실을 인정하기 싫은 시먼스는 자동차 사고로 제자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선생의 오만함이 뒤틀린 방식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결실을 맺는 결말을 보여준다. 자신이 해고된 주원인이 레이만 역의 텔러 때문임을 알면서 그는 텔러를 중요한 무대에 세웠다. 처음에는 단지 복수하기 위한 선생의 치졸함으로 비춰졌고, 레이만은 무대를 뛰쳐나갔으나 대가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는 선생의 말처럼 무대에 올라 드럼 연주로 모두를 지배한다. 


아직 대가를 길러보지는 못했다고 고백한 시먼스에게 마침내 대가가 될 제자가 탄생했는지는 미지수다. 그 연주로 인해 텔러, 레이만의 명성이 상당해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하지만 여자 친구도 매몰차게, 별로 감정의 동요도 없이 차버리고,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도 무대에 오른 광기의 제자가 얼마나 사회성 있는 인간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가 예전의 또 다른 시먼스의 제자처럼 목을 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결국 그 무대에서 성공했다고 내셔널 혹은 세계적 스타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윕래쉬의 감독은 고작 29살에 불과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감독이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미칠 듯한 노력을 하면 무언가 이루어질지 모른다고 권유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사실 새로울 것은 없고, 해볼만하다는 야심을 불어넣기도 하지만 소위 구조의 문제를 간과하게 만들 위험이 크다.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자조에 빠지게 만드는. 내 탓이라며 미친 자아는 날기 위해 인공의 날개를 푸드덕거리다 추락사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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