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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슬픈 해적

by wannabe풍류객 2009.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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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 신문 같아 신경도 안 쓰던 세계일보에 보기 드문 개념 기사가 실렸다. 소말리아 해적에 대한 것이다.

[세계는 지금] "소말리아 해적? 진짜 해적은 따로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해적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대항해시대 게임을 하면서 해적들과 싸워서 그런 건 아니고, 디지털 파이러시를 옹호해서도 아니다. 몇 년 전 조선과 일본의 공식적 관계에 대한 글을 쓰면서 흔히 일본'놈'들 중 악질로 생각하고 있을 '왜구'가 사실 그렇게 깨끗하게 경계가 지어지는 집단이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치명적이게도 왜구의 상당수는 조선에 살던 사람이었다. 동경대 교수 한 명은 딱히 일본이나 조선에 속하지 않은 경계인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왜구를 이루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왜구뿐이 아니라 중국 해적에도 조선 사람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사실로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쉽사리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를 침범하는 해적이야 죽일 놈들이지만, 해적은 미화의 대상이기도 하다. 국가에서 해적질을 부추긴 영국때문일까? 해적을 다룬 문학에서 거친 남자의 향기를 느끼기 때문일까? 인터넷 시대에 들어서는 카피레프트 운동의 일환으로 해적 행위를 정당화하는 거대한 공감대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해적은 삶의 문제이기에 공감대를 얻기도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번 세계일보의 소말리아 해적 기사도 그렇다. 국가 권력이 붕괴된 소말리아 사회에서 어부의 삶을 지켜주는 건 없었다. 외국의 어선들이 소말리아 앞바다의 고기를 '남획'했다. 소말리아 해적의 시작은 이런 평범한 어부들의 자기 방위, 삶의 터전 보호에 있다고 한다.

국가가 개인의 삶을 보호할 능력이 없을 때 개인들은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말리아 해적도 할 말은 있었다고 봐야 한다. 지키는 사람이 없다고 소말리아 근해에서 마구잡이로 어로 행위를 하게 놔둔 다른 국가들의 책임, 소말리아 정치, 더 넓게는 아프리카의 소위 'failed state'를 양산한 국제 사회의 책임 등 단순히 소말리아 해적이 나쁜 놈이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물론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자기 방어에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상선을 위협해서 몸값을 받아냈던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지만, 해적만 때려잡아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소말리아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국가의 재건이 필수적이고, 타국민의 생존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대규모 어선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 청해부대의 활동은 해군의 실전 경험을 쌓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나, 소말리아 정치를 추스리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더 근본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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