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하지만 소위 '명작'들을 소원만큼 많이 보진 못했다. 그런 작품 중 하나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인데 최근 '이주연의 영화음악' 팟캐스트를 듣다가 언급이 되길래 그 영화의 원작인 Heart of darkness를 갑자기 읽고 싶어졌던 터였다.
지옥의 묵시록을 선뜻 보지 못한 것은 영화가 길어서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읽었던 어려운 영화 평론 잡지에서 영화 해설을 본 기억도 한몫했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인가 싶었는데 누가 어딜 찾아가서 누굴 만나는 얘기라는데 그걸 철학 이론을 동원해 꽤 어렵고 심오한 의미로 해석한 글이었다. '이주연의 영화음악'을 듣고서야 이 작품을 근거로 만든 영화이기에 그랬다는 걸 알았다.
어둠의 심연 |
진작에 사 두었던 반스앤노블스의 영문판 조지프 콘래드의 Heart of darkness가 있었지만, 최근에 엄격하게 번역을 하겠다고 다짐한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알게 되어 이 시리즈의 하나인 '어둠의 심연'이라 번역된 판본으로 읽어보았다. 전에 영어로 읽으려는 노력을 해보았지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그 느낌들을 알기가 어려웠기에 초반에서 읽기를 중단한 터였다. 요즘엔 번역본도 괜찮은 게 많다기에 여러 버전 중 을유의 것을 구매했다.
위에 이미지처럼 Heart of darkness라는 제목은 '어둠의 속' 혹은 '암흑의 핵심' 등으로도 번역되었다. 그러나 을유본을 구매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어둠의 심연'이라는 번역이 더 적절해보인다. Heart를 그냥 '속'이라고 하면 아득한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느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걸 '핵심'이라고 하면 그 핵심만 파악하면 모든 걸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책의 분위기는 핵심 파악으로 정리가 쫙 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영문판을 봤을 때도 깨달았지만 이 책을 그나마 번역이 잘 된 것으로 보이는 한글판으로 본다고 이해가 잘 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한 번 더 읽거나 영문판으로 다시 봐야 서평 정도 되는 걸 쓸 수 있을 것 같고, 지금으로선 얄팍한 인상을 나열하는데 그칠 것이다.
작품 해설을 보고 알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콘래드 자신의 실제 경험이 토대가 된다. 그는 실제로 주인공이자 화자인 말로처럼 선장이 되어 벨기에령 콩고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다만 인물들의 이름을 생략하거나 바꾸며 상징성 혹은 대표성을 더 부여하였다.
이 책은 제국주의 비판이라는 식으로 많이 설명되고 소개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책의 해설에도 나오는 것처럼 영국 제국주의에 대해선 호의적인 시선이 보여 그렇게만 볼 수도 없다. 분명 책 속엔 제국주의로 인해 인간성을 무시당한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제국주의 비판인지 인종주의인지 애매해 보인다. 식인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자신과 같은 백인과 소통할 수 없는 동물적 존재로 묘사되는 느낌이 강하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바닷 사람으로서의 시각이었다. 산골 출신에 여행도 많이 못 다녀서 바다가 아직 무서운 나로서는 육지가 아니라 배 위가 삶의 중심인 사람들의 심성을 이해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선원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라는 대목들이 많다. 해양 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의 심성은 뱃사람의 마음인걸까 궁금해진다.
중요한 대목은 커츠가 대변하는 바가 무엇이고, 말로가 커츠를 만나며 어떻게 변하는가라고 볼 수 있겠으나 지금으로서는 딱히 뭐라 단정할 수가 없다. 단편적인 생각거리들을 적어두고 일단 마친다.
커츠는 천재였지만 미쳐버린 사람으로 묘사된다.
땅에 묻힌 상아를 파낸다.
말로는 왜 커츠를 이해하게 되나.
커츠의 마력은 어디서?
원주민들은 커츠를 왜 따르나. 왜 데려가지 못 하게 하나.
무엇이 '끔찍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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