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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orary

비중격만곡증 수술 후기

by wannabe풍류객 2012.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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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드디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콧물을 자주 흘리던 터였다. 코피도 많이 흘린 것 같다. 하지만 내 코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안 것은 불과 일 년 전의 일이다. 코감기로 한동안 고생하던 차에 은평구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았는데 다짜고짜 엑스레이를 찍어보자고 한다. 코감기에 무슨 호들갑인가 했는데 의사는 내게 '비중격만곡증'이 있어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비중격이 만곡되었다함은 대강 아래 사진 같은 상황이다. 코가 비뚤어진 것인데 외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콧 속에서만 비뚤어진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사람들 대부분이 조금씩이라도 한쪽으로 휘어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데 작년 2월은 학기가 시작하기 직전이라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검색을 하던 차에 보라매병원의 진홍률 교수가 비중격 부분의 권위자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쪽에서 여름방학에 수술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보라매가 집에서 가장 가까운 큰 병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 것 같기도 하고, 병원에 가는 일정과 학기말의 번잡함 때문에 결국 못 가고 말았다. 하지만 2학기 시작된 후 코감기로 다시 된통 고생하고 난 후 공교롭게도 다시 보라매병원에 가게 되었고 결국 1월 초에 수술을 받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정말 수술을 받고 어제 퇴원했다.

전에 비중격만곡증이라는 말에 내가 어떤 수술을 받게 될지 궁금해 인터넷에서 많은 검색을 해봤다. 생각보다 많은 글이 있었고, 꽤 흔한 수술인 것도 알게 되었다. 간혹 재밌는 글들고 있었는데 수술을 받고 보니 내가 경험한 것과 차이도 있는 것 같아 내가 받은 수술 과정을 써보는 게 의미가 있을 듯 싶다. 

<1월 3일>

예정된 입원일이다. 전에 병원에서 내게 준 안내물에 물컵, 슬리퍼, 화장지, 세면도구 등을 준비하라길래 챙겨서 가방에 넣고 병원을 찾았다. 수고스럽게도 장인어른께서 동행하셨다. 두 시까지 입원 수속을 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약간 일찍 도착했다. 입퇴원수속실에 서류를 건네니 행복관 72병동에 가보라고 한다. 72병동에 갔더니 5인 입원실에 조만간 자리가 나는데 잠깐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곧 퇴원할 수술이라 호들갑 떨 것도 없어 잠깐 기다려서 5인실에 가기로 했다. 30분도 기다리지 않은 것 같다. 간호사가 곧 나를 불렀고, 간호사들이 있는 창구 바로 옆에 있는 방의 출입문 바로 옆의 자리가 내게 배정되었다. 워낙 개방된 자리라 입원내내 쉬고 자는데 고생했다. 

수술은 다음 날인데 입원 전 날 2, 3시부터 무얼 하나 불만이고 고민이기도 했는데 병원 측에서 나를 계속 찾아주었다. 체온과 혈압은 퇴원할 때까지 수시로 쟀고, 이비인후과에도 두 번 가야 했다. 밤 9시에는 간호사가 찾아와 왼팔에 항생제 주사를 놓았다. 알레르기가 있나 검사한다고 한다. 팔에 낙서가 생겼다. 이후 주치의(레지던트) 선생님이 다음 날 있을 수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의무 사항이라 부작용도 설명했는데 듣기에 좋지는 않았다. 나는 세번째로 수술을 받기로 되었는데, 두번째로 수술을 받는 18살 청년이 함께 주치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 친구는 코성형수술을 받는데, 수술만 2시간에서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나는 1시간~1시간 30분이 예상된다고 한다. 전에 인터넷에서 보기로는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밤 11시에 마지막으로 혈압을 잰 후 들락날락 거리는 간호사와 다른 환자분들의 고통 호소, 뒤척임 등에 몇 번씩 깨며 잠을 청했다. 밤 12시부터는 금식이라 11시가 넘어서까지 과자를 먹으며 다음 날 허기를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1월 4일>

3일에는 입원을 했어도 수액을 맞지 않아 환자가 된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4일 아침이 되자 7시가 조금 넘었는데 누군가 와서 내 오른팔에 수술용 바늘을 꽂았다. 그냥 보기에도 굵은 바늘이었다. 수술용 바늘이 제일 굵다고 한다. 살에 꽂힐 때 꽤 아팠는데 불행히도 한 번에 제대로 안 꽂혀서 두번이나 꽂히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 바늘이 살에 박힌 이후 곧 수액이 몸 속으로 들어왔다. 

3일에 듣기로 내 수술은 세 번째로 예정되어 있었고 앞의 두 수술은 모두 코성형이라 두 시간 정도씩 걸리는 걸 감안해서 12시 정도에 수술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8시 30분에 진홍률 선생님 회진이 있었던 걸 보면 처음 들었던 것처럼 8시에 수술이 시작되지 않은 건 분명했다. 나중에 복도 벽에 붙은 게시판 글을 보니 원래 회진이 8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출근도 안 하고 아침부터 와서 나와 함께 수술을 기다렸다. 하지만 12시가 되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한 시가 지나도 심지어 두 시가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배고파서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계속 나고 있었다. 세 시가 다 되어서야 내 차례가 왔다. 어제 주치의로부터 수술에 대한 설명을 들은 그 청년의 수술이 오래 걸린 듯 했다. 나를 수술실로 데려갈 스트레처가 왔다. 내 평생 누워서 이동한 것은 처음인 듯 싶었다. 이젠 정말 환자가 되었다 싶었다. 수술실은 영어로 operation theatre였다. 극장이라. 나는 마취 상태일테니 연기자는 아니고 연기 소품이련가. 

수술실에서 기다리자니 앞 수술이 마침내 끝난 것 같았다. 진 교수가 나와서 수술이 잘 됐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나도 수술실에 들어갔고, 아내와 이별했다. 들어가기 전 잠깐 고개를 돌려봤는데 아내는 다른 곳을 보고 있어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도 몇 번 코너를 돌아서야 수술실에 들어갔다. 내 손, 배에 내 상태를 체크하기 위한 도구들이 부착되었고, 한 의사가 내 입에 마스크를 씌우며 열 번 크게 심호흡을 하라고 했다. 여섯 번인가 하고 난 이후 정신을 잃었다. 

비중격만곡증 수술이 개인병원에서는 보통 부분마취를 한 후 실시된다는 말을 들었고, 며칠 전에는 실제로 그렇게 수술을 받은 분의 경험담도 들었다. 하지만 보라매병원은 전신마취를 한 후 수술하는 것이 방침이라고 한다. 개인병원에서는 당일에 수술받고 퇴원할 수 있는 반면 보라매에서는 전신마취 때문에 며칠 입원해야해서 불만이 없지 않았다. 아내는 전신마취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깨어보니 수술이 다 끝나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나는 갑자기 깨어났다. 회복실이었다. 코에 통증이 느껴졌는데 옆에서 간호사들이 계속 심호흡을 하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폐가 쪼그라들어있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한단다. 코에서 피가 나는지 간호사들이 피를 닦아주다 아예 거즈를 코에 고정시켜두었다. 생각보다 몸은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시계가 보였다. 하지만 처음에 시간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다섯 시가 넘어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수술실에 간 지 두 시간은 지난 시점이었다. 아내의 설명을 들으니 네 시 오십 분쯤 수술이 끝났다고 한다. 마취하는데도 삼십 분은 걸리는 등 수술 준비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또 비중격 수술만 한 것이 아니고 콧 속의 혹을 제거하고 어딘가 불필요한 살을 지졌다는 말도 들었다. 3일에 간호사가 말한대로 거의 세 시간이 되자 회복실에서 출발해 입원실로 향했다. 아내와 장인 어른 등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입원실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고생해야 했다. 여전히 간호사들은 심호흡을 계속 하라고 요청했다. 코에서는 피가 계속 나왔고, 콧물까지 나고 있었다.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와 자꾸 뱉어내야했다. 병원에서 화장지를 준비하라고 한 것은 토하거나 흘리는 피를 위한 것이었나보다(화장실에는 휴지가 준비되어 있었다). 꽤 많은 화장지를 소비했다. 그나마 8시가 되니 입으로 피를 토해내는 일은 없어졌다. 코의 통증이 없지 않았으나 입원실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간호사가 진통제를 주사해서 문제는 없었다. 주사를 놓을 때마다 오른팔에 잠깐씩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입원실에서 돌아온 후 6시간이 지나야 뭐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자정이 되야 먹을 수 있었다.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있을까도 싶었지만 아내에게 부탁해 죽을 사서 옆에 두었다. 10시가 넘어서는 정신도 말짱하고 별로 할 일도 없어 12시만 기다렸다. 딱히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그냥 금식이 끝난다는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신호 같았기에 빨리 죽을 먹고 싶었다. 12시 정각이 되자 간호사에게서 먹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같은 병실의 다른 분들이 불을 끄고 잠들 때 나 혼자 죽을 먹었다. 코가 수술을 받은데다 무언가로 막혀 있어 맛이 느껴지지 않았으나 급하게 2/3 쯤 되는 양을 먹어치웠다. 이후 잠을 청했는데 몇 번 깼지만 전 날 보다는 오히려 더 잘 잔 것 같다. 

<1월 5일>

4일 아침에는 다짜고짜 팔에 굵은 바늘이 꽂히더니, 5일 아침 7시 경에는 주치의가 처치실로 오라고 불렀다. 코를 막았던 솜(?)을 뺐다. 전에 인터넷에서 보기로는 비중격 수술 후 코를 솜으로 꽉 막는다고 하던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제 회복실에서 깬 이후에는 오른쪽 코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다고 느낄 정도였다. 양쪽 코에 있는 것은 한 번에 뽑혀 나왔다. 주치의는 코의 피와 콧물들을 빨아들인 이후 내 입 속의 것들도 빨아들였는데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 나왔다. 회복실에서 양쪽 눈가에 눈물이 많이 말라 붙었던 게 생각난다. 나도 모르게 많이 아팠나보다. 

아침 8시에 식사가 나왔다. 2박 3일의 입원 일정이었지만 병원 밥은 딱 두 번 먹었다. 우유도 나오고 나쁘지 않았다. 먹은 차에 어제 먹다 남은 죽도 다 먹었다. 먹는 게 기뻐서인지 과자도 계속 집어 먹었다. 

9시가 넘어 진찰실에서 진교수님을 다시 보고 왔다. 수술이 잘 됐다는 말을 다시 들었다. 다음 화요일에 다시 오기로 했다. 수술이 잘 된 건 물론 좋지만 팔에 꽂았던 주사 바늘을 뽑아낸 게 가장 좋았다. 팔에서 피가 꽤 나왔다. 아직도 바늘이 꽂혀있던 자리를 만지면 아프다. 

수술 후 한군데 더 아팠던 곳은 목구멍이다. 수술 동안 목으로 튜브를 넣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흔들리는 이빨이 있는지 의사들이 물어본다. 수술 후 처음에는 몰랐는데 몇 시간 후부터 목 안이 부어서 다음 날까지 아팠다.

아직 가정산 상태라 수술 및 입원비가 정확하진 않은데 80만원대였다. 다음 화요일에 정확하게 정산할 예정이다. 몇 달 전 수술을 위한 검사비로만 10만원 이상 지출한 걸 합하면 거의 백 만원이 되겠다. 개인병원에서 하는 게 비용면에서는 훨씬 저렴했을 것 같다. 작년 2월에 비중격만곡증을 진단했던 개인병원에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제시한 금액이 50만원 이하, 아마 2, 30만원대를 제시했던 것 같다. 선택의 문제인데 좋은 의사 선생님에게서 수술을 받은 게 장기적으로 나을 것이라는 기대로 위안을 삼으려고 한다.

<1월 6일>

잠을 잘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코에서 피는 아직 나온다. 어제 퇴원한 이후 식사 후 약을 먹어야 하고, 식염수로 코 안을 소독해야 하고, 다른 약 두 가지도 콧 속에 넣어줘야 한다. 번거롭긴 하지만 코가 아프지 않은 건 다행이다. 피는 소량이나마 아직 계속 나온다. 

짧은 입원과 수술이었는데 괜히 주변 사람들에게서 큰 일을 치른 듯한 말을 자꾸 들어 민망하다. 코가 비뚤어진 게 내 잘못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빨리 회복되어 마음껏 숨쉬고 싶다.

<1월 10일>

예정대로 오후 두시 30분에 병원을 찾았다. 조금 늦었지만 대기없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콧속에 있었던 무엇인가를 실밥을 제거하여 떼어냈다. 약간 따끔했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선생님께서 아주 만족하다는 듯이 수술이 잘 되었다고 강조하셨다. 정말 어제부터는 피도 거의 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빨리 낫나 의아할 정도이긴 했다. 오늘 떼어낸 것 때문에 피가 다시 조금 나는데 이제부터는 그 부위에 연고를 바르라고 한다. 박트로반이 처방되었다. 

병원에는 3주 후에나 오란다. 매주 한 차례 정도는 병원을 찾아야 하는 줄 알았는데 수술이 정말 잘 된 모양이다. 식염수로 세척을 계속 해야 하는지, 나자린이라는 이름의 분무액을 콧속에 계속 뿌려야하는지는 모르겠다. 물어봤어야 했는데. 

가정산한 병원비를 제대로 계산했는데 전에 과다하게 내서 2만 5천원 가량을 돌려받았다. 원무과에 가서 보험사에 낼 초진진료차트도 발급받았는데 비용은 2천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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