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y
어두운 정의: 다크 나이트
wannabe풍류객
2010. 8. 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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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잠을 자야했으나 나도 모르게 다크 나이트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잠깐 자면서 보는 와중에 영화의 러닝 타임이 끝나가고 있었다. 놓친 부분이 많음에도 전에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되새겨볼 계기가 되었다.
원래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다. 같이 본 선배께서는 무언가 많은 말씀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으나 당시의 나는 괜찮은 영화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어떤 함의가 있는지 잘 모르던 상태라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배트맨 혹은 브루스 웨인은 이율배반적인 캐릭터다. 고담시라는 장소에서 절대적 부를 장악한 자본가가 밤만 되면 선행을 베풀기 위해 전신을 검은 색 의상으로 감추고 활약한다. 박쥐라는 것 자체가 이도 저도 아닌 회색인, 경계인을 상징하는 동물이지만 배트맨 캐릭터는 참으로 비정상적이다.
배트맨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범죄가 횡행하는 고담시의 개혁이라고 치자. 영화 속에서 경찰은 불완전한 치안 조직이고 수많은 범죄 집단을 처단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배트맨 자신도 혼자 힘(웨인은 언제나 혼자 행동한다)으로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악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 것이다.
돈이 넘쳐나고 할 일이 없는 기업가의 유흥이라기엔 배트맨은 너무 진지하다. 오히려 배트맨이라는 정체성이 기업인 브루스 웨인의 정체성보다 우선시되고 있다. 그런데 너무 무모하다. 그 무모함을 통해 사람들의 각성을 유도하는 것일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트맨의 정체를 모른다.
다크 나이트에서 가장 의아한 것은 마지막 장면이다. 내가 이해하기로 배트맨은 '드디어' 살인 혐의가 있는 범죄자가 된다. 이전에는 공권력을 우회하는 자의적 정의 실현을 추구했기에 경찰의 표적이 되었지만 이제는 확실한 강력 범죄자 리스트의 일원이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살인은 하지 않았던 그의 원칙이 깨지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그 원칙을 공개적으로 시민들에게 주지시킨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동안의 행적이 그런 원칙의 추론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짝퉁 배트맨들이 총을 쏴대는 걸 강력히 제재했던 사례처럼.
배트맨은 백기사 하비 덴트가 변심한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그가 영원히 정의의 화신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악한으로 인식되는 어려움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칙이 무너진 이후 배트맨의 행동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배트맨이 배트맨으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게다가 배트맨의 행동은 핵심 측근들조차 강한 의문을 제기할 정도였다.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용서가 되는 것인가? 과연 배트맨이 '정의로운' 인간인가?
고든 형사는 영화 말미에 도망가는 배트맨을 보며 그가 아무 잘못이 없지만 더 큰 정의를 위해 악한으로 그려지고 비난을 받고 추적을 당하는 수모를 감당할 수 있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마 배트맨은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너진 원칙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하비 덴트라는 백기사를 사람들의 가슴 속에 살려놓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커 이후 다른 악한들이 줄줄이 등장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그 악한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겠다? 사람들은 배트맨을 믿을 수 있을까?
배트맨이라는 존재가 어설픈 짝퉁들을 양산하고 조커라는 정반대 인물의 호기심을 자극해 사회에 더 큰 악영향을 일으킨다면 과연 가치가 있는 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생겨날 수밖에 없는 악, 부조리라면 배트맨의 방식이 얼마나 효율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브루스 웨인은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에 투신해보는 게 어떨까. 정치를 잘 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정치라는 장은 사회를 바꿔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범죄자들과 1:1로 치고받은 후 경찰서 앞에 포박해 두는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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