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y

The Crying Game

wannabe풍류객 2020. 1. 23.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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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열매를 이제서야 맛보았다. 1993년 국내에 개봉할 때는 나이가 어려서 볼 수도 없었고,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도 없었기에 더욱 더 흥미를 끌었던 그 영화, 닐 조던 감독의 크라잉 게임을 오늘 봤다.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열매는 그다지 달콤하지 않았다.

 

굳이 28년 전의 영화를 왜 보았는지 짧게 경로를 이어가보면 다음과 같다. 예전 닐 조던 감독의 영화로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푸줏간 소년이다. 오래간만에 다시 보고 싶어져 닐 조던 감독을 구글에서 검색하던 와중에 그가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마이클 콜린스의 감독이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한 내 기억 속에는 동성애 영화로 남은 크라잉 게임의 감독이기도 한 걸 확인했다. 크라잉 게임은 심지어 평점도 상당히 좋은 영화였다. 두어 번 본 푸줏간 소년말고 한 번도 안 본 크라잉 게임을 먼저 보기로 했다.

 

검색 중 이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에서 IRA가 등장한다는 걸 보고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다. 최근에는 거의 소식을 들은 바 없지만 90년대에는 첨예한 주제였던 IRA를 다룬 영화였다고? 영화는 분명히 초반에 IRA를 등장시켜 포리스트 휘태커를 인질로 잡은 후 살해했다. 그러나 이후의 큰 줄기는 스티븐 레아가 연기하는 주인공 퍼거스가 휘태커의 연인이었던 딜을 찾아가고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딜이 여성처럼 화장하고 여자옷을 입었지만 성별 구분으로는 남성이었음이 큰 반전 요소다. 하지만 영화가 동성애 영화임을 안 이상 처음부터 딜의 얼굴 그리고 특히 손에서 남자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퍼거스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진실을 알고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방황하게 된다.

 

딜은 퍼거스/지미가 자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걸 알았는데 그 이유는 크게 캐묻지 않았다. 자신을 진정 사랑해주는 한 상관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퍼거스의 동료이자 매력적인 여성인 주드가 등장하자, 질투심을 느끼고 그녀가 자신의 옛 연인 조디의 죽음을 초래한 유혹자라는 걸 알게 되며 폭발한다. 결국 딜은 주드를 살인하지만 퍼거스가 딜을 도망가게 하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며 투옥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IRA의 일원인 퍼거스가 조디를 죽이고, 조디의 애인이었던 딜을 찾아갔다가 사랑에 빠지고, 퍼거스를 발견한 IRA의 옛 동료들은 그를 어떤 판사의 납치?암살?에 동원하려했지만 딜이 퍼거스를 저지하며 IRA 부대원은 대로변에서 죽고, 다른 부대원인 주드가 딜을 죽이기 위해 왔다가 딜에게 죽음을 당하는 흐름이다. 이야기 구조가 복잡하지는 않다. 다만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매우 폭발력있던 IRA 이슈와 당시에,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금기의 영역이었던 동성애를 다뤘다는 점에서 1990년대 전반기에는 핫한 영화라고 하겠다. 동성애 이슈가 이제는 한국에서도 미국만큼은 아니라도 이야기되는 분위기의 전환은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지금 시점에서는 영화의 분위기가 확 와닿지 않고 그 때는 그랬지라고 감정이입을 상당히 노력해봐야 했다.

크라잉 게임은 1992년작이고, 1993년에 한국에 개봉되었다. 당시 신문 기사를 보면 동성애가 등장한다는 이유로 도덕성의 훼손을 우려하는 기사들이 넘쳐났다. 조금 더 전의 작품인 트윈 픽스가 한국에서 방영될 때도, 공중파 방송이라 더했겠지만 매춘 장소가 나온다는 이유로 굉장한 이슈가 된 기억도 난다. 트윈 픽스는 미국에서도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어서 지나친 신체 노출은 애초에 없었음에도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이제와 생각하면 이상할 지경이다. 그만큼 사회의 변화가 상당했다는 걸 새삼 느낀다.

따지고 보면 남성 성기를 달고 있는 두 캐릭터가 키스는 했지만 그것 정도로 동성애가 어쩌고 할 일인가 싶다. 따지고 보면 두 인물간의 성적 접촉은 그 정도에서 끝난다. 딜은 자신을 꾸준히 여자라고 주장했다. 그의 성적 정체성은 자신의 신체적 기관과 달리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동성애 영화라고 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다만 영상으로 딜의 성기가 노출되었다는 측면에서 당시 한국 사회는 상당한 경기를 일으켰을 것 같다. 이제는 lgbt가 아니라 더욱 미세한 성적 정체성이 등장한 상황에서 9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의 성적 감수성은 매우 둔감했고, 그 사회 속에서 남녀 이외 다른 정체성을 가졌을 사람들이 느꼈을 억압을 생각해보게 된다.

재미있게도 영화에는 세 번의 유사한 장면이 나온다. 초반 주드의 유혹으로 조디가 주드의 몸을 더듬고, 퍼거스는 딜의 몸을 더듬고, 주드가 퍼거스의 몸을 만지는 장면이다. 세 장면은 비슷한 상황이지만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첫번째 사례는 주드의 가짜 사랑에 의한 덫이었고, 두번째는 딜이 남자의 성기를 가진 걸 몰랐던 상황이고, 마지막은 주드가 퍼거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IRA라는 대의에 완전히 충실한 이념가의 측면이 두드러졌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남녀의 사랑 장면은 아니었다. 주드는 영화 초반의 금발을 다른 색으로 염색해 다른 사람처럼 행세했고, 그건 지미로서 딜과 만나온 퍼거스도 마찬가지였다.

지미에게 자기가 남자인 걸 알았지 않냐는 딜의 항변이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때로는 아니 종종 가면을 사랑하기도 한다. 가면을 오래 쓰면 가면이 진실이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전갈과 개구리의 우화를 말하며 변하지 않는 본성을 논한다. 퍼거스/지미는 사람을 죽이지 못 하고, 오히려 사람을 살리는 본성을 가졌다. 다른 맹목적인 IRA 부대원들은 지령에 충실했고, 개처럼 죽었다. 퍼거스는 예외적인 인간일까? 퍼거스 캐릭터는 테러리스트 집단인 IRA에 대한 변호일까? 퍼거스는 딜 때문에 침대에 묶이지 않았다면 지령대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는 착한 본성을 따랐다. 아일랜드 출신으로서 감독이 IRA에 우호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방적인 옹호가 아니고,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기에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더 자세한 반응은 그 때 영국, 아일랜드 기사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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