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mporary

애국적 보도 행태의 문제

wannabe풍류객 2009. 5. 1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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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7시 뉴스가 시작되었고 주요 뉴스로 칸 영화제의 박쥐 상영 소식이 들려왔다. '외국'의 관객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방에 들어와 8시 뉴스를 틀으니 마찬가지로 박쥐 얘기가 나왔고, 이어서 임창용이 시속 160km의 공을 던져 일본을 놀라게 했다고 하고, 또 추신수가 어제에 이어 큼지막한 홈런을 쳤다는 소식이 이어진다. 심심하여 9시 뉴스를 틀어놓으니 똑같은 패턴이다. 게다가 MBC에선 내일 김연아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는 모양인데 이름하여 '퀸연아, 나는 대한민국이다'란다.

형언할 수 없는 갑갑함이 느껴진다. 박쥐가 기립박수를 받았고, 그에 이어 온갖 수상 가능성이 섣부르게 튀어나온다. 상영 이후 프랑스 언론에서 평가가 엇갈렸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중요하지 않다. 송강호, 박찬욱 인터뷰가 나오며 이미 수상이나 한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래서 어쩌라고?

추신수가 홈런을 쳤다! 팀은 굿바이 홈런을 맞아 7-8로 졌다. 어쨌거나 추신수는 홈런을 또 쳤고, 타율을 3할 가까이 끌어올렸고, 당당히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4번 타자다. 어쩌라고?

임창용이 160km짜리 공을 던졌다.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어쩌라고?

김연아? 더 말해 뭐하랴.

괜히 태클걸자는 게 아니다. 언론에서 기사를 만들고 독자/시청자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문제삼는 것이다. 김연아의 경우는 아주 노골적으로 애국 마케팅에 사용된 사례지만, 거의 모든 해외에서 활약 중인 선수에 대한 기사/보도도 애국적인 시각을 깔고 간다. 당연히 한국인들이 그런 기사를 원하는 측면이 있어서일테고, 이는 곧 돈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 번 생각해보자. 추신수가 홈런을 쳤다!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야구 선수인 청소년이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선수들은 그의 타격 자세에서 한 수 배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에게 그 사건은 어떤 실질적 이득을 안겨주지 않는다. 더구나 야구 선수는 일년에 수많은 경기를 치르고, 추신수가 컨디션이 좋다면 앞으로도 무수히 홈런을 쳐댈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그때마다 그의 홈런, '멀티' 히트를 보도한다. 물론 성적이 곤두박질친다면 아예 보도를 안 할테지만. 예를 들어 지금 고교 야구 대회가 있었다면 언론에 보도가 될까? 한국 고교야구에 대한 관심은 너무나 비참할 정도로 적어서 이제는 언론에서 소식을 듣기도 힘들다. 일본에 비해 그렇게도 고교야구가 취약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아 물론 가정한 상황이니 앞으로 있을 고교야구 대회를 그나마 예전보다 잘 보도할지 아닐지를 속단하지는 않겠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또 선수들은 흔히 립서비스로 자신의 타율, 홈런 수 같은 기록보다는 팀의 성적을 우선시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접하는 해외 스포츠 소식은 극단적으로 대한민국 국적 선수의 활약에 집중되어 있다. 소속 프로팀이 이겼는지 졌는지는 맨 마지막에 짧게 언급되고 만다. 심정적으로 당연한 건지 모르지만 그 팀의 성적은 우리 한국인의 관심사가 아니다. 게다가 요즘은 10년 전처럼 박찬호만 있는 것도 아니고 걸핏하면 일본 선수가 다른 팀에서 뛰고 있으니 관심도 분산되고 일본 선수가 잘 하면 화딱지만 날지도 모른다. 물론 MLB를 챙겨보시는 팬들에겐 실례지만 대다수 한국인은 선수들의 단편적인 활약상만 계속 보게 되는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정리를 하자면 이런 분위기 혹은 선입관이 있다고 하겠다. 수많은 국민들이 해외의 '우수한', 혹은 '한국보다 우월한' 그래서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의 활약을 원하고 그런 소식을 원한다는 관념. 그런 뉴스는 스포츠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종종 종합 뉴스의 중간 기사로도 등장한다. 오늘처럼. 동시간 혹은 유사 시간의 모든 방송에서 똑같은 행태를 보였다는 건 이런 뉴스의 가치를 언론/방송에서 얼마나 똑같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물론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다. 당연히. 하지만 난 MLB의 다른 선수, 예를 들어 어떤 베네수엘라 선수가 야구사에 길이 남을 엄청난 활약을 했다고 하면 '당연히' 박수를 보내고 싶어질 것이다. 또 한국 고교야구에서 엄청나게 재밌는 경기가 나왔다고 한다면 보고 싶어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클리블랜드가 몇 위인지, 추신수 때문에 얼마나 팀이 나아졌는지 알지 못한다. 개인 스포츠가 아니니 원래 알 수 없는지도 모르지만. 모든 이유를 차치하고 우리는 추신수가 홈런을 때리고 멀티 히트를 했다는 사건에 환호하라고 언론에게 강요받는다.

한국에서 추신수 뉴스의 가치는 순전히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올라간다. 그는 훌륭한 선수다. 우리 한국인이 거국적으로 응원을 해주면 더 잘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무거운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 아닐까? 국가대표 운동 선수들은 적당히 하면 안 되나? 한국 스포츠는 언론에서부터 너무 엘리트 중심으로 보도를 하기 때문에 왜곡이 심해진다. 그동안 한국 스포츠는 즐겁다기보다는 치열하다못해 처절했다. 말처럼 쉽게는 되지 않지만 운동 선수들을 좀 놔주면 안될까?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얼마나 국가 이미지 관리에 좋은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금메달 수를 숭배하고, 올림픽 공식 순위가 없는데도 굳이 순위를 매겨야 하고, 또 한편에선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따는 '효자' 종목이 있는데 평소에는 보통 외면당하는 기묘한 현상은 사라져도 좋지 않을까. 결국 이는 현실 국제정치에서 이루지 못하는 국가간 민족간 우열을 스포츠를 통해 반전시켜보겠다는 열등감에 다름아니다. 이것도 하나의 단순화이긴 하지만 이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외에서 뛰는 프로 선수들은 다 자기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연봉받기 위해 열심히 뛰는 것이다. 그들이 비공식 한국 대표로 뛴다는 심정은 있겠지만 그게 제1의 동기는 아니다. 예를 들어 LPGA을 보면 지금은 한국 출신 선수가 너무 많아(미셸 위까지 끌어들이지 않아도) 한국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둬도 그런 사건은 너무 많으니까 뉴스거리가 잘 되지 않는다. 즉 굳이 그들이 한국을 위해 뛴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뉴스를 크게 다룰 필요성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선수들끼리 LPGA 우승을 다투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건 애국주의로 확대 해석할 여지가 별로 없어진다. 이젠 정말 대표팀에 소집되었을 때에만 한국을 위해 뛴다고 봐주면 안될까? 아니 그것도 지금까지는 너무 지나쳤다. 왜 은메달, 동메달 딴 선수들이 못했다고 눈물을 흘려야 하나. 돈벌려고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왜 매국 운운하며 비난하나. 돈은 알아서 잘 벌라고 하고, 대표팀에서의 행동이나 활약은 그 때 다시 평가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일부에 집중되는 관심을 조금만 넓혀도 한국 스포츠의 전반적인 저변과 수준이 꽤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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